2023년 8월 메모 <상온 보관 도중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여름 상온 보관 + 건조한 환경’ 이 만나서 산화(오렌지 빛 림)한 와인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런 와인들은, 과실 뉘앙스 / 산도 / 탄닌이 거의 없습니다. 혹은 신맛이 두드러지게 튀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오래된 와인 뉘앙스를 냅니다. 아세톤 향 같은 것이 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시기 전에, 정보 전달 차원에서 현재 상황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와인 생활 시작하고 올해(2023년)가 네 번째 여름입니다. 중간에 이사를 해서 보관 조건이 한 번 달라졌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사 전 집은 한 여름에도 온도가 아주 올라가진 않았고 습한 편이었는데 오히려 와인 보관에는 괜찮은 조건이었네요. 이사 후 산화 문제가 생긴 지금 집은 아주 건조하고, 퇴근 후 처음 들어오면 열기가 후끈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나마 환기도 안 되는 펜트리에 넣어 놨으니 찜질방이 따로 없겠네요. 왜 이 생각을 진작 못했을까!
1년차 여름 : 완전 초보일 때라 한 병씩 사서 마셨기 때문에 ‘한 여름 상온 보관시 산화하는 문제’를 겪지 않았습니다.
2년차 여름 : 슬슬 와인을 쌓아 놓고 마시기 시작했지만, 이사 전 집에서는 산화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3년차 여름 : 문제가 생긴 이사 후 집이지만, 위스키와 전통주에 빠져있을 때라 와인은 필요할 때마다 한 두개씩 사다 마셨습니다. 길어야 1~2주 내에 다 마셔서 그런지 그 당시 리뷰를 보면 산화한 게 별로 없네요. 근데 0은 아닙니다. 내가 향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산화한 와인을 인지한 것인지, 정말 몇 개는 보관 조건 때문에 산화한 것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4년차 여름 : 산화 문제 대량 발생! 다시 와인에 푹 빠져서 잔뜩 사다가, 펜트리 찜질방에 넣어 놨네요.
* 처음에는 대형 마트에서 구매한 와인들이 산화한 게 많아서, 계속 세워 놓은 걸 구매했나 하고 그 쪽을 의심했는데, 누적된 구매처를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관 조건의 문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 한 여름 두달여를 지나서도 간혹 멀쩡한 와인들이 있는데, 코르크를 만져보면 와인 닿은 쪽은 손가락에 살짝만 힘을 줘도 말랑하게 들어갑니다. 심지어 바깥쪽도 안쪽보다는 덜하지만 말랑한 감촉이 느껴집니다. 산화한 코르크 바깥쪽은 마른 느낌이 들고 뻣뻣하며 딱딱합니다. 보관 장소의 건조함 때문일 것 입니다.
* 저는 와인 셀러 없이 가능한 방법을 다 찾아볼 생각입니다. 일단은 펜트리에 습도 조절을 위해 젖은 수건을 놓거나, 한여름엔 출근 전에 꽁꽁 얼은 아이스팩을 놓고 퇴근해서 교체하는 식으로 실험해보려고 합니다.
* 이 글을 보러 오신 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보관 방법을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 1] 상온 보관은 길어도 2주를 넘기지 말자.
[결론 2] 보관 기간이 월 단위로 넘어가면 빨리 마시자.
[결론 3] 고가 와인은 수량이 적을테니, 냉장고에 보관하자.
[임시 결론 4] 2개 밖에 없었지만, 화이트 와인은 둘 다 멀쩡했다.
‘와인은 예민하다’ 라고 합니다. 빛을 직접적으로 쬐어도 안 되고,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아도 안 되고, 흔들리거나 진동이 있어서도 안 되고요.
그래서 일단 구매는 했는데 이것 참, 어디에 보관해야 할 지 한 번쯤 고민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어디에’ 라는 물음에 ‘와인 셀러’를 떠올리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와인 보관을 위해서 와인 셀러는 것은 꼭 필요한 것 일까요?
(와인은 어디서 살까? <- 링크!)
조금 곁 길로 새는 것 같은데, 제 와인 생활의 성향부터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구매하는 와인은 주로 2~3만원대 입니다. 이 가격대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면 그때 타겟을 좀 더 올려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2만원대 와인을 마시다가 가끔 4만원짜리를 마시면 아주 짜릿합니다.
또 2~3만원대에서 만족스러운 혹은 탐구할만한 와인을 찾으면 그 기분도 끝내주죠. 이건 와린이에게만 주어지는 시간 제한 걸린 특혜니까 마음껏 즐겨두려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어서 말씀드릴 내용은 고가 와인이 없는 상황에서 경험한 것 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목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빛이 들지 않는 방에 눕혀서 상온 보관합니다.
‘와인랙’ 으로 검색하면 병들을 쌓아서 보관할 수 있는 제품들이 많습니다.


(2023년 8월 추가) 한 여름에는 펜트리에 두지 마세요~!
와인 병을 눕히는 이유
병을 눕히는 이유는, 와인이 코르크에 닿아야 코르크가 팽창해서 병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최대한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병을 세워 놓으면 코르크가 점차 말라서 수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빈틈이 생깁니다. 그 빈틈으로 공기가 많이 유입되고 결국 와인이 조금씩 산화 합니다.
그렇다고 오픈 하지 않은 와인을 몇 일 세워둔다고 갑자기 맛이 확 변해버리지는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비싸고 좋은 와인들은 코르크를 오픈 하지 않아도 병 안에서 숙성된다고 하는데, 이는 와인 병을 눕혀 코르크가 팽창해 있는 상태라도 아주 극소량의 공기는 조금씩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미세한 공기와의 접촉을 5년, 10년 혹은 더 길게 가져가면서 타닌과 산도는 부드러워지고, 오랜 숙성에서 나오는 특유의 맛도 생겨납니다.
가진 잠재력에 비해 오래 숙성된 와인들은 잔에 따르면 와인 테두리(림)가 황갈색으로 보입니다. 와인앤모어에 갔을 때 시음적기가 지났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90대 빈티지의 와인을 저렴하게 10만원 이하로 판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험 삼아 한두번 마셔보니, 개인적인 표현 입니다만 길거리에 파는 번데기 같은 향이 났습니다. 파우스티노 1세 그랑 리제르바 같은 2000년대 빈티지도 약하게 나마 비슷한 뉘앙스를 느꼈구요. 어쨌든 이런 뉘앙스는 상한 와인에서도 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즉, 숙성과 상함의 경계는 오묘하고, 결과는 맛이 ‘좋아졌다’와 ‘나빠졌다’가 되는 것 같습니다. 원인은 공기와의 접촉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얼마나 오래(지나치게)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 이겠지요.
와인 셀러는 꼭 필요할까?
와인의 숙성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온도입니다. 오래 전 냉장고가 없던 시절 프랑스 등에서는 지하에 와인셀러를 만들었고, 그때의 온/습도와 동일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지금의 와인전용냉장고인 와인셀러가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이 가전 제품은 사용자가 설정한 숙성 온도를 맞춰주고, 습도 관리와 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와인셀러는 크게 두가지 타입이 있는데, 열전소자 방식과 컴프레셔 방식입니다. 열전소자는 효율이 좋지 못해 보관할 수 있는 병 수가 적습니다. 또한 셀러를 열고 닫거나 주변 실내 온도에 따라 내부 온도를 빠르게 혹은 아예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온도를 잘 유지하는 컴프레셔 방식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면 크기가 커지고 비용이 높아지게 됩니다. 진동도 생기고요.
좋은 와인을 좋은 가격에 구매하고 오래 숙성해서 시음적기에 드시려는 분들은 와인셀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오픈 했는데, 와인이 상했다면. 이 와인이 애초에 문제있는 바틀이었는지, 보관하다 셀러에 문제가 생겼던 것인지 등의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염려되어 장기 보관은 못 하겠습니다.
지금은 길어야 한두달 이내에 마실 와인들만 보관 중이므로 셀러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 상온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종종 상한 와인을 만나긴 합니다만, 이게 제 환경 문제인지 구매처에서 오랫동안 세워 보관한 탓인지 확정 짓기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판단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