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향을 잘 맡기 위한 노력들 (업데이트 : 2023.11.05)


술에서 향을 찾는 것은 내 사고 회로에 전혀 없는 행위였다.

음식이야,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구운 냄새가 서로 다르고, 참기름이 들어간 시금치 나물이나 꼬릿구수한 순대국밥처럼 개성 강한 음식에서는 향이 나니까 맡았을 뿐이다. 살아오면서 자주 맡다 보니 길거리 지나다 특정 향을 맡았을 때 그 음식이 연상 되었다.

와인의 가치 중 절반은 향에 있다고 한다. 그만큼 향이 중요하고 좋다는 의미인 만큼 나도 잘 맡고 싶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왜 일까?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 해서 와인 향을 능숙하게 분간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열할 고민과 실험, 연습 끝에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 항목의 순서는 아래처럼 구성했다.
내 몸 상태 확인 -> 와인 상태 확인 -> 적절한 도구 선택 -> 실제 와인 향을 맡는 행위 -> 부족한 부분 공부



코 씻기

코 속 이물질 때문에 답답하면, 물로 씻어 낸다.

세면대에서 흐르는 물을 양손에 모아 담고 양쪽 코를 담근다. 코 속에 물이 자연스럽게 가득 차면 5초 정도 유지했다가, 헹! 풀어낸다. 3회 정도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코가 깨끗하게 뻥 뚫린 느낌이 들고 개운해진다. 향도 훨씬 명확하게 맡아진다.


와인 온도 조절

와인을 상온에서 보관하고 있었다면, 마시기 전 냉장고에 넣어서 온도를 낮추자.

나는 한 달치 와인을 사서 창문이 없는 펜트리에 보관 한다. (나의 와인 보관 방법 게시물) 하지만 이렇게 상온 보관 중이던 와인을 그대로 마시면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 한다.

겨울은 그나마 괜찮다. 여름이 문제다. 에어컨을 종일 켜놓을 수 없으니 집 안 온도가 높다. 이럴 때 냉장고에 30분 정도 넣어 두면 과일 향이 쫀쫀해지고 맛있어 진다. 그렇다고 온도를 너무 떨어뜨리면 향이 나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적절한 온도를 찾는 방법

내가 했던 방법은, 냉장고에 최초 10분 넣었다가 빼서 향과 맛을 본다. 온도를 더 낮추려면 한잔 마시는 동안 다시 코르크를 끼워 막고, 다시 냉장고에 10분 둔다. 이렇게 맛을 봐 가며 자기 환경에 맞는 적당한 시간대를 실험으로 찾을 수 있겠다.

완료 조건은, 상온에서 느껴지던 향 뉘앙스가 살아있으면서 향이 너무 풀어지지 않고 상큼한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잔 표면에 김이 서리면 안 된다.

나는 다음 주제인 브리딩 시간 까지 고려해서 아래 처럼 시간 조절 한다.

한 여름 밤 10시에 와인을 마시려고 한다. 7시에 와인을 냉장고에 넣고, 8시에 꺼내서 오픈 한다. 한 잔 따라 낸 뒤, 채소 씻는 큰 볼에 와인 병을 기울여 담아서 산소와 닿는 면적을 넓히고 2시간 뒤에 마신다.

냉장고에 1시간씩 두는 이유는 브리딩 시간 동안에도 와인 온도가 올라 가기 때문이다. 마시려는데 생각보다 온도가 낮다면 와인 잔 볼 부분을 따뜻한 손으로 잡고 스월링 해주면 온도가 꽤 올라간다. 어쩌다 냉장고에 너무 오래 두어 잔에 김이 서릴 수도 있다. 이건 온도가 너무 낮다. 그 와인은 차라리 진공펌프로 밀봉하고 다른 와인을 꺼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정리하면, 1시간 냉장실 칠링 + 2시간 상온 브리딩 한 뒤에 마신다.
급하면 냉동실 15분 이후, 곧바로 마시면서 향의 변화를 체험하는 것도 좋다.


브리딩, 디캔터

‘숨쉬기’ 라는 뜻의 Breathing. 와인이 산소와 닿는 것을 뜻한다.

와인이 산소와 닿으면 향과 맛이 변한다. 내 경험으로는 이렇다.
오픈 직후 좋은 향이 나지 않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병을 오픈하고 한 잔 따라낸 뒤 한 시간 정도 놀다 온다. 그럼 한참 두었던 첫 잔은 꽤 맛있어 졌다. 병에서 새로 따른 두 번째 잔은 조금 갸웃거려지지만 그런대로 마실 만 하다. 병에서 브리딩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두 번째 잔을 너무 빨리 마셨다면, 세 번째 잔에서는 좋지 않았던 첫 잔의 그 모습을 보게 된다.

브리딩은 마치 두꺼운 고기를 굽는 것 같다. 아래 그림처럼 와인이 산소와 닿는 면적을 원으로 그렸을 때, 그에 수직 아래 방향으로 조금씩 좋은 의미의 산화가 진행되는 것 아닐까? 대신 핑크색 부분은 계속 산소에 노출되어 고기가 타듯 과도한 산화가 일어날 수 있겠다. 그것을 계속 버텨내면 좋은 와인이라고 하는 것이고?


디캔터는 산소와 맞닿는 면적이 넓어서 빠른 산화가 일어 날 것이다. 대신 너무 오래 두면 손상되는 면적도 넓다는 의미가 될 테니 디캔터에 오래 두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럼 병 브리딩 시간을 서너시간 정도로 길게 준다면 디캔터를 쓸 때 보다 더 섬세한 향은 살아있는, 좋은 상태가 될까? 기억나는 경험을 적어보면 이렇다. 모두 3~4만원대 와인이었다.

  • 8시 오픈 한 와인을 병에 둔 채로 12시까지 마시면서 ‘나빠졌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대신 잔에 따른 상태에서 다른 일 때문에 30분 이상 시간이 오래 지났을 때 향과 맛이 탁 풀리면서 맹~ 하게 변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 잔에서는 또 괜찮았다. 병보다 잔에서 산화가 빨리 일어 나는 것 같다. 공기가 들어오는 입구가 훨씬 크니까 당연히 그럴 것 같다.
  • 8시 오픈 한 첫 잔을 마시다가, 리덕션이 있는 것 같고 향도 잘 나지 않아서 10시에 디캔터로 옮겼다. 다시 병으로 옮기기 귀찮아서 디캔터에 담은 채로 12시까지 마셨다. 시간을 특정하긴 어렵지만 1시간 이상 지나니까 와인 맛이 약해진 기억이 있다. 디캔터에 둔 채로 마신 적은 두 번 밖에 없는데 그 중 한 번 경험한 일이라서 확실하다고 말할 순 없다.

그래서 와인 생활 3년 차인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다음 주제인 리덕션이 있는 경우, 와인을 디캔터로 옮겨 담는다. 10회 정도 빙글빙글 돌려서 산소와 닿게 하고 10분 정도 세워 둔다. 디캔터에서 향을 맡아보고 괜찮아졌으면 다시 병으로 옮기거나, 디캔터에 둔 채로 잔에 따라 마신다. 보통은 천천히 변화하길 바래서, 날릴 것만 날리고 다시 병에 옮겨 담는다. 깔때기가 있으면 편하다.
  • 리덕션이 없더라도, 기대했던 향이 아니라면 디캔터를 사용해 볼 수 있겠다. 흔히 말하는 ‘와인이 닫힌 상태’ 라고 해야 할까?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이런 경우 화들짝 놀랄 만큼 선명하게 좋아진 경험은 없다. 디캔터 쓰는 게 부담스러워서 주저하는 면이 있는데, 이것도 다 경험이니까 계속 실험해봐야겠다.

리덕션

리덕션이 있을 때는 디캔터를 쓴다. 과일 향을 회복할 때 까지 기다린다.

흔히 말하는 리덕션(=환원상태)은 와인에 산소가 부족한 상태를 의미한다. 리덕션이 발생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와인을 완전히 밀폐된 콘크리트나 스테인레스 통에서 발효하면 산소가 전혀 들어올 수 없어서 리덕션 상태가 된다고 한다.

발효 이후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미세하게 나마 산소와 접촉할 수 있으므로 이런 일이 잘 없다고 한다. 대신 과일 뉘앙스에 집중하고 싶은 와이너리에서는 오크 뉘앙스가 덧입혀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숙성까지 콘크리트나 스테인레스 통에서 진행한다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덕션이 있는 와인은 조금만 숨을 돌리면 과일 뉘앙스가 잘 느껴진다고 한다. 리덕션은 병 브리딩 1시간 이상 or 디캔터 10~20분 or 와인 잔에서 스월링 5분 정도면 금새 사라지는 편이다.

그래서 리덕션 상태의 와인은 어떤 느낌인가? 누가 내 코를 공유해서 ‘맞아, 바로 그게 리덕션이야’ 라고 한 적은 없으므로, 내가 판단한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향이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브리딩을 했을 때 해소되어 과일향을 풍부하게 느낀 경험이 있어서, 아 이걸 말하나보다 라고 짐작하고 있다.

바로 앞 디캔터 주제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디캔터에 모든 와인을 붓고 10회 정도 흔들어 돌리고 10분 정도 뒀다가 다시 병으로 옮겨서 마시면 리덕션 상태를 제거한 모습으로 마실 수 있었다.


잔 선택

와인 성격에 따라 달리 선택한다. 단순/강렬 or 복잡/섬세

두괄식이다. 와인생활 3년차인 지금 나의 결론! 내가 다시 와인 생활 초반으로 돌아간다면 딱 아래 잔만 구비할 것 같다.

  • 레드 와인 : 소피앤왈드 피닉스 보르도 / 버건디
  • 화이트 와인 : 리델 베리타스 소비뇽 블랑
  • 샴페인이나 스파클링은 거의 마시지 않아서, 와인샵 사은품으로 받은 플랫 잔이면 충분하다.

와인 잔의 종류, 부위별 명칭

와인 잔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단순하게 보면 다음의 조건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 립(잔 입구)이 넓은 것과 좁은 것
  • 볼(잔 몸통)이 넓은 것과 좁은 것
  • 립과 볼이 좁고 위아래로 긴 것 – 스파클링 와인
잔 부위 설명
잔 부위 별 명칭

화이트 와인 잔과 여러 형태의 잔

디캔터와 ISO규격 잔
왼쪽 2개가 화이트 와인 마실 때 사용하는 잔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상큼한 과일 향이 장점인 와인들은 시원하다고 느낄 정도로 온도를 낮춰 마신다. 그래서 잔에도 적게 따라서 낮은 온도를 유지해가며 마신다. 그런 이유로 보통 화이트 와인 잔은 레드 와인 잔보다 크기가 작다.

하지만 오크 숙성을 했거나 향이 섬세하고 풍부한 화이트 와인이라면 그것보다 조금 더 온도를 올려서 향을 즐기는 것이 좋다. 보통 화이트 와인 잔 보다 볼은 조금 더 크고, 립은 좁게 하여 향을 모아주는 형태가 좋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샴페인 잔은 기포가 금새 휙 날아가면 안되니까 아주 폭이 좁다. 그리고 올라오는 기포를 보기 위해 세로로 길쭉하다. 흔히 샴페인은 향보다 기포와 산도를 즐기기 위해 마신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향을 퍼뜨릴 볼록한 잔이 잘 없다. 물론 아주 고급 샴페인은 향을 맡기 위해 화이트 잔 내지는 보르도 잔에서 마시기도 한다.


레드 와인 잔 비교

보르도 잔 비교
보르도 잔 비교
흔히 생각하는 레드 와인 잔으로 이해하면 된다.

부르고뉴 잔 비교
부르고뉴 잔 비교
피노누아 처럼 섬세한 와인을 담는 잔이다. 향을 넓게 퍼뜨리기 위해서 보르도 잔 보다 볼이 훨씬 크다.

레드 와인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섬세한 와인과 파워풀한 와인이다. 섬세하다 는 것은 연하지만 다양한 향이 나는 와인을 말하고, 파워풀한 와인은 향의 종류가 많지 않더라도 그 향들이 강하게 피어나는 것을 말한다. 아주 뭉개서 말하자면, 보르도가 파워풀하고 부르고뉴는 섬세하다고 한다. 그래서 보르도 와인 잔 보다 부르고뉴 잔 몸통이 훨씬 크다. 와인을 스월링 할 때 넓은 와인 잔 안쪽 면에 얇고 넓게 퍼뜨려서 섬세한 향 성분을 풍부하게 피워내려는 목적이다.


제대로 된 와인 잔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와인을 마셔보겠다고 마음 먹은 2020년 5월. 처음으로 구매했던 와인 잔은 슈피겔라우 보르도 잔이었다. 2개들이 2만원대로 구매했었고, 잔이 뭐 별거 있겠어 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1년 동안은 불편함 없이 잘 사용했었다.

그러다 ‘잔 두께가 얇으면 음료를 마실 때 음료 자체에 집중할 수 있구나’ 라는 경험을 어디선가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와인 잔도 얇으면 와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 때 좋은 잔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런 저런 잔을 사보다가, 가격도 좋고 튼튼한 리델 베리타스 까베르네 잔을 메인으로 한참 사용했다. 그 당시 2개들이 8만원대였다. 와인 서너병 값이지만, 깨뜨리지만 않으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으니까 아깝지 않은 투자라고 생각했다. 실제 사용해보니 그 전보다 립이 얇아져서 마실 때 감촉이 꽤 좋았다. 그런데 향을 맡는 측면에서는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내 코가 예민하지 못 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리델 베리타스 까베르네 잔은 입구가 너무 넓다. 향을 맡으려 하면 공기와 지나치게 많이 섞여서 향이 다 풀어져 버린다.

가격대별 잔 두께 차이
가격대 별 와인 잔의 두께 차이
우측 하단 이미지에 동그란 형태, 직각 형태로 선을 그어 놓았다. 이것은 립의 절단면 상태를 의미한다. 직각으로 깎여 있으면 와인을 입에 넣을 때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만큼 떨어뜨릴 수 있다.

큰 잔의 필요성

실제로 얼마 전, 후안 길 실버 라벨을 마시면서 경험했다. 첫 잔은 소피앤왈드 피닉스 보르도 잔에 따랐다. 이 잔은 삼각형 비슷하게 생겨서 내 표현으로 ‘잘토 타입’ 이라고 한다. 볼 크기는 적당한데 입구가 아주 좁다. 즉, 향을 잘 모아주는 잔이다. 그런데 후안 길 실버 라벨은 향이 아주 강렬하고 뭉쳐있으며 알코올도 높아서 코가 아팠다. 그래서 소피앤왈드 피닉스 버건디 잔으로 바꿨다. 보르도 잔보다 볼도 립도 더 큰 잔이었지만, 여기에서도 뭉친 향은 풀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로, 정말 오랜만에 잔 입구가 가장 넓은 리델 베리타스 까베르네 잔을 꺼냈다. 이제서야 뭉치고 뭉개져 있던 향이 나풀나풀 넓게 퍼졌다. 여러 향들이 코에서 감지되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커피를 상상해보자. 빨대 구멍처럼 좁은 입구에서 뜨거운 김과 함께 향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 넓은 입구에서 살살 퍼져 나오는 것 중 어느 쪽이 향기로울까.


정리

나는 대체로 소피앤왈드 피닉스 보르도, 버건디 잔과 리델 베리타스 소비뇽 블랑 잔으로만 마시고 있다.

레드 와인을 마실 때 가장 먼저 소피앤왈드 피닉스 보르도 잔에서 향을 맡아본다. 코가 아프거나 향이 너무 압축되었다고 느껴지면 피닉스 버건디 잔으로 바꾼다. 앞서 예로 들었던 후안 길 실버처럼, 향이 너무 강하면 잔 입구가 더 넓은 잔을 꺼내기도 한다.

화이트 와인은 소비뇽 블랑이나 리슬링 처럼 과일향이 좋고 상큼한 와인들은 리델 베리타스 소비뇽블랑 잔을 사용한다. 신대륙 샤도네이 처럼 오크 뉘앙스가 풍부하고 묵직한 와인은 소피앤왈드 피닉스 보르도 잔에 따라 마신다.

(2023.11.05 내용 추가)
참고로, 평소 잔 보관을 나무로 된 장에서 한다면 마시기 전 넉넉히 30분 전에 잔을 꺼내 놓는 것이 좋다. 유리 잔에 나무 냄새가 잔뜩 묻어서 와인에서 나는 뉘앙스로 오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거나 후후 불면 사라진다.


스월링

와인을 넓게 퍼뜨려서 향 성분이 피어 오르게 만드는 행위

와인 마시는 모습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다. 와인을 입에 머금고 호로록 소리를 내는 것과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는 모습이다. 와인 잔을 돌리는 것은 스월링 이라고 하며, 잔 안쪽에 와인을 넓게 퍼뜨려 뭍이고 향 성분이 피어 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와인 생활의 기본이지만, 최근에 스월링을 했더니 향이 너무 섞여서 분별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다. 그래서 잔을 5분 정도 세워 두었다가 향을 맡았더니 뒤섞인 향이 아니라 정갈한 향이 느껴졌다. 이런 방식도 향을 맡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마도 휘발성이 강한 향 성분이었을 텐데, 어떤 종류인지 알아봐야겠다.

와인 스월링

한 손으로는 영상을 찍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월링을 하다보니 힘이 들어가서 너무 빨리 돌렸다. 좀 더 천천히 돌려도 된다.


향은 어떻게 맡을까? 코는 어디에 놓아야 할까?

킁킁킁 맡을까? 흐~읍!하고 맡을까?

금방 할 수 있으니까 둘 다 해봐야겠다. 킁킁 맡으면 코 속에서도 가까운 수용체에서 향을 감지하고, 콧구멍을 크게 벌리고 흐~읍 깊게 들이마시면 코 속 깊숙한 곳에서 반응하지 않을까? 개인차에 따라 특정 위치의 수용체가 더 민감할 수도 있으려나? 나는 코를 싹 씻고 있는 콧구멍이 단단해질 때까지 힘껏 크게 벌려 흐~읍 하는 쪽이었는데, 최근에는 킁킁 으로도 향이 좀 맡아지는 것 같다.

코의 위치란, 스월링 후 잔을 기울여 가만히 두고 코를 여기저기로 옮겨본다는 의미다. 잔의 정중앙을 기준으로 상하좌우, 코를 잔 안쪽 깊숙히 넣어도 보고 잔에서 살짝 떨어져 맡아도 본다. 여러 곳에 코를 대보면 가끔 위치에 따라 다른 향이 느껴질 때가 있다. 향 종류에 따라 무게 차이가 있다면 위치에 따라 향이 다르게 나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날 때마다 해보고 있다. 가끔 의미 있는 차이가 느껴질 때도 있다.


향을 맡을 때는 입이 닿지 않은 쪽을 찾자.

나는 잔 베이스에 로고가 박힌 쪽으로만 입을 대고 마신다.

나는 와인을 마실 때 와인 잔 로고가 있는 쪽만 입을 댄다. 그리고 향을 맡을 땐 로고가 9시 방향으로 가도록 살짝 돌려서 코를 대고, 마실 때는 다시 로고가 6시 방향에 오도록 한다.

이것은 입에 닿은 안주나 침 등 다른 요소가 잔에 묻어 향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코와 입이 잔에 닿는 위치를 구분하는 것과 함께, 안주를 먹을 땐 반드시 키친 타올 한 칸을 접어 옆에 둔다. 음식 한 입 먹고, 입술에 묻은 것들을 키친 타올로 꾹꾹 눌러 닦는다. 내가 이 행동을 하다보니 어쩐지 영화에서 본 것만 같은 장면이다. 그게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와인 생활 초반에 와인과 함께 먹던 치킨 냄새 때문에 와인 향을 맡을 수가 없어서 고민 끝에 고안한 방법인데, 어느 새 몸에 익어서 의식하지 않아도 내 손가락이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습관이 참 무섭다.

와인 잔 입 위치

음식 없이 와인만 즐기더라도 타액과 와인이 만나면 뭔가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이 경우에는 가끔 향의 단서를 찾는데 도움 되기도 한다. 안주 없이 입을 대던 부분에 코를 대면, 향을 압축 한 것 같은 뉘앙스가 자주 난다. 주로 스윗한 성분들이 많았다.


향의 다른 형태를 자주 접해보자

분명히 와인에서 향은 나는데 도무지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과일을 좋아해서 자주 먹는 편이다. 하지만 소위 서양 과일인 블랙베리 / 라즈베리 / 블랙(레드)커런트 같이 와인에서 향으로 표현되는 과일을 먹어보지는 못 했다. 와인 향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그래서 일까? 스파이스 라고 부르는 향신료 역시 육두구, 정향, 팔각 같은 것들이 있는데 향은 둘째 치고 이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실물 향과 맛을 보고 싶었다.

향신료 스파이스
향신료 (spice)
냉동 과일 블랙베리
냉동 과일 – 블랙베리 (추천)
말린 과일
말린 과일
말린 과일 (나는 효과 못 봄)

내가 이것 저것 사보면서 느낀 점을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 내가 먹어 본 과일 베이스 식품은, 신선한 것 / 말린 것 / 얼린 것 / 주스 / 캔디 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그 외 과일향 립밤 같은 것도 있음)
  • 신선한 것이 가장 좋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오랜 시간 둘 수 없다.
  • 말린 것은 원재료에 열이 가해졌기 때문에 내가 느끼고 싶은 풍미가 훼손된 감이 있다.
  • 나는 얼린 것이 가장 좋았다. 인터넷과 대형마트에서 냉동 과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냉동실에서 바로 꺼내 먹으면 차가워서 원재료의 맛을 느낄 수 없으니, 나는 먹을 만큼 작은 접시에 담아 실온에서 30분 정도 두었다 먹는다. 저녁밥 먹기 직전에 실온에 꺼내 놓고 후식으로 먹으면 딱 좋다. 특히 많은 레드 와인에서 표현되는 블랙베리가 궁금해서 냉동으로 사다 놓았는데, 위 내용처럼 먹고 나면 냉동 과일이 녹으면서 그릇에 주스가 조금 생긴다. 여기서 와인의 향을 느꼈다.
  • 쉽게 구할 수 있는 주스 중 와인과 관련된 것은 푸룬이 있다. 푸룬은 서양 자두를 말린 것이라고 하는데 약국에서 산 푸룬 주스는 너무 진해서 와인에서 느껴질 만한 맛은 아니었다. 다음에 마시게 되면 물을 좀 타봐야겠다.
  • 캔디는, 평상시 깊게 고민하지 않고 군것질 겸 뉘앙스 새겨 놓기 용도로 먹어보려고 했다. 근데 막상 사려고 찾아보면 와인 향과 관련된 캔디는 많지 않다. 체리 캔디나 있을까? 괜히 설탕 덩어리를 매일 먹기보다는 냉동 과일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먹으면서 뉘앙스를 잡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 식품은 아니지만 립밤이나 핸드크림처럼 자주 사용하는 용품에 과일향이나 머스크 향 같은 것이 있으면 자주 맡게 되니까 도움이 될 것 같다. 실제로 체리 립밤은 꽤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입술 주변이 조커처럼 새빨갛게 된다는 거.

이렇게 원재료 맛을 경험한 것은, 향 분석의 정답 혹은 결과를 인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럼 와인 향을 맡고 이 결과까지 연상해 내는 과정을 훈련하면 될 것 같다.


아로마 키트

번호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던 것을 눈 감고 뒤섞는다.

키트를 산지는 꽤 됐다. 2년 지났으려나. 참 손도 안 가고, 향도 안 맡아지고, 이게 무슨 향인지 알고 맡으니 그런가 보다 싶고. 그냥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로마 키트도 블라인드로 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눈 감고 뒤섞어서 아래처럼 시향 기록을 남겼더니 너무 재밌었고, 간혹 같은 향을 같게 표현한 것들을 보면 괜히 뿌듯해졌다. 아로마 키트를 사용하는 전문적인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방법이 좋은 것 같다.

아로마트키 시향 기록
르네 뒤 뱅 아로마 키트

내가 마실 와인의 향을 미리 알아두기

와인을 만든 곳에서 말하는 향을 미리 알아보자.

와인 향에 정답은 없다지만, 최소한 만든 사람이 공인한 뉘앙스를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와이너리 사이트의 해당 와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와인 뒷 라벨에서 와이너리 명을 확인하고, 구글에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유럽 와이너리 라면, 사이트에서 지원하는 영문 페이지를 확인하거나 웹브라우저(예, 크롬 등)의 번역 기능을 통해 페이지 전체를 한글로 바꿀 수 있다. 어색한 부분이 많지만 와인 페이지까지 찾아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그렇게 하여 찾고 있는 와인의 상세 페이지까지 들어갔다면, 해당 와인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세세하게 잘 기록한 곳도 있고, 간단하게 적어둔 곳도 있다. 보통 테크시트 라고 부르는 pdf 파일 형태의 문서가 있는데, 해당 와인을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적어두었다.

[예시]
* 토마시 와이너리 사이트 (링크)
* 토마시 아마로네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상세 페이지 (링크)
* 토마시 아마로네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2016 테크시트 (링크)

나는 5만원 이하 와인들을 주로 마시는데, 와이너리 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는 가격을 보면 10~20 유로 혹은 달러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특이한 주세 때문이다. 어쨋든 이 가격대라면 가장 아래 등급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테크시트를 상세하게 써 놓은 곳이 많지 않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Tasting Note 항목은 있다. 여기서 특징으로 안내하는 서너가지 항목을 찾는 연습을 해보니까 꽤 재밌었다.


비교 시음과 블라인드 테이스팅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도와 줄 사람만 있다면 정말 재밌는 와인 놀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하고 싶은데, 여건이 되지 않아서 아래처럼 비교 시음을 해본 적 있다.

  1. 똑같은 잔 2개를 준비하고 잔 바닥과 병에 같은 스티커나 견출지로 표시한다.
  2. 각 잔에 와인을 따르고, 표지가 넓은 책 위에 두 잔을 놓는다. 눈을 감고 딴 생각을 하며 돌려 섞는다.
  3. 이 한 잔을 비교 시음 하며 특징을 잡고, 어떤 와인인지 맞춰 본다.
  4. 하루에 두 병은 다 못 먹으니까 남은 와인은 진공펌프로 막아 냉장고에 두고 다음 날 다시 시도 해본다.

이 방법도 재미 있을 것 같지만, 주제를 잘 못 잡아서 괜히 와인 두 병을 오픈한 적이 있다. 검은 과일과 붉은 과일의 차이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들이기는 아까워서 1만원대 칠레 메를로와 리오하 와인을 위 순서대로 실행했다. 그런데 이미 색부터 검고 빨갛고 너무 달라서 기껏 눈감고 섞은 보람이 없었다. 와인의 품질을 떠나서 향도 너무 명확하게 다르니까 이런 주제는 블라인드 비교 시음으로 좋지 않았다.

이왕 하려면, 비슷한 특징의 와인들을 비교해야겠다. 예를 들면.

  • 붉은 과일 뉘앙스가 날만한 끼안티, 네비올로, 피노누아, 땜쁘라니요 를 섞어볼 수 있겠다.
  • 검붉은 과일 뉘앙스 쪽은 메를로, 말벡, 시라, 까베르네 소비뇽 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 특히 말벡과 시라는 내 기준에 공통점이 많아서 재미가 있으…려나? 오히려 내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이건 블라인드 하지 않고 대 놓고 보면서 차이점을 찾아가는 게 더 재밌겠다.

사실 가장 재밌는 놀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이다. 하지만 혼자서 하려면 쉽지 않다. 다음의 조건이 만족해야 한다.

  • 보유 중인 와인의 생산국가, 지역, 품종이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으면 좋을 것 이다. 특정 품종만 잔뜩 있는 상황이라면 생산자와 밭을 구별하는 것도 한 번쯤은 해볼 만 하겠다.
  • 와인을 오픈하고, 병을 보자기에 씌우고, 무엇인지 모를 와인 한 잔을 내 앞에 가져다 줄 조력자가 필요하다. 가장 좋게는 내가 모르는 와인을 몰래 사와서 한 잔 따라주면 더 좋을 텐데.
  • 얼마 전, 조금 사치를 부려 와인리스트가 아주 다양했던 적이 있다. 그 때 귀찮아 하는 와이프를 졸라 딱 한 번 위처럼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었는데, 너무 재밌었고 또 조금 아쉬웠다. 끝이 살짝 노랗게 날아간 것이 꽤 숙성된 것 같았고, 살짝 스치는 피망과 juicy한 검붉은 과실미 그리고 자글거리면서 조금은 뻑뻑한 탄닌까지. 이 정도 하면 보르도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마침 당시 집에 에스프리 드 파비 2016 이 있었다.
  • 이렇게 와인 색이나 과일 향 분류(검은가 붉은가)만 감지해도 소거법으로 집에 있는 와인리스트가 꽤 날아간다.
  • 그래서 확실히 가장 좋은 건 둘 이상의 모임에서 각자 와인을 가져오고, 미리 코르크를 오픈하여 보자기에 씌운 채 만나는 것이다. 가족이나 지인이 와인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만한 놀이가 없을 텐데 아쉽다.

쓰다 보니 향을 위한 공부는 아닌 것 같지만, 선입견 없이 와인을 마주하면 꽤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으므로 이번 게시물에 넣어 놓아야겠다.


고마운 유튜버 선생님들께 많이 배우자

유튜브에는 전문가도 있고, 취미 레벨이 아닌 것 같은 일반인도 있다. 그들의 말을 맹신하지는 않되, 일단 정보는 모두 흡수하자. 그리고 내 경험과 판단을 기준으로 실험하고 인정하고 배제하자.


내가 확실하게 아는 향은 무엇인지 체크해 나가자.

나는 부끄럽게도 따지고 보면 몇 개 없다. 그 어느 날, ‘와 이제 와인 향을 좀 알 것 같아’ 싶은 날이 오면 그 동안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왔는지, 그날에야 알게 된 것을 예전에는 무엇이라 생각했는지 비교하는 등 여러 목적을 위해서 블로그에 기록하는 중이다.

예를 들면, 빨간 체리는 파시스 불독이라는 와인에서 확실히 느꼈다. 군것질 류에 사용되는 체리 맛. 딱 그 것이다. 오크 뉘앙스는 나무 냄새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와인을 처음 오픈 했을 때 마른 먼지 냄새는 리덕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들은 별도 게시물로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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