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 라피트 로칠드 양조팀이 이마트 21주년(2014년) 기념으로 만든 와인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 아시아 최초의 유통시장 전용 셀렉션 이라고 하니 이마트에서 굉장히 공들였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첫 구매 때는 이름에 혹해서 집어 들었다가, 맛과 향이 변화는 과정을 처음 경험해서 너무 재미 있었던 좋은 기억이 있는 와인입니다.
그 좋았던 기억에 이후로도 몇 번 더 마셨지만, 그 사이 다양한 와인들을 마시면서 입맛이 조금은 까다로워졌는지 1만원 대라는 가격적 한계에 의한 맛의 한계가 느껴져서 잘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다시 마셔보려고 찾아보는데, 잘 보이지 않아서 직원 분께 여쭤봤더니 이제는 잘 안 들어온다고 하네요. 보르도를 처음 접해보려는 지인들에게 좋은 선택지로 추천하곤 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 낮은 가격대의 맛있는 보르도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가격을 조금 올려서 2~3만원대 샤또 시트랑 이나 역시 이마트에서만 구할 수 있는 에스프리 드 파비 를 권할 것 같습니다. 저도 꽤 맛있게 마셨습니다. (자주 가는 매장이 이마트나 와인앤모어다 보니 신세계엘엔비 와인들이 대부분이어서 경험치를 더 늘릴 필요는 있겠습니다.)
와인을 마시는 기초적인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이 곳(‘와인 마시는 방법’ 게시물 링크)을 참고해주세요.
목차
관련 사이트 링크
- 수입사, 신세계엘엔비 : http://www.shinsegae-lnb.com/product/wineView?id=323
- 와이너리 : https://lafite.vin.co/KHARPE
- ‘열심히 만들었다’ 정도의 이야기 말고, 참고할 만한 자료는 없음
WNNT_16 – 라피트 보르도
와인 생활 시작 후, 16번째로 마셨던 와인.
노트 – 2020년 6월 12일
라피트 로칠드 2017. 부드러운 맛을 담당하는 메를로 70%와 묵직함을 담당하는 까베르네 소비뇽 30%를 블렌딩 했다고 한다(수입사 사이트와 와인21을 참고함). 보르도 5대 샤또 중 하나인 샤또 라피트 로칠드를 양조하는 팀에서 만든 데일리 와인이라는데, 간만에 보르도 와인(여러 품종을 섞은 블렌딩 와인)이 먹고 싶어서 가성비 위주로 찾다가 로칠드라는 이름이 눈에 딱 띄었다.
저녁 반주로 처음 오픈했을 때는 시고 밍밍하고 아무런 향도 없어서 표정으로 구기고 있었더니, 와이프가 “왜? 별로야?” 라고 해서 끄떡끄떡 했다. 그러다 10분 뒤에 잔에 따라 놓은 와인이 베리 향 같은 걸 내기 시작하더니, 30분이 지나니까 보르도스러운 맛으로 변해갔다. 와 맛있다! 산소와 닿게 하는 브리딩을 10분 이상하면 맛있게 변하는 구나!
그 날 다 못 마시고 배큐빈 진공 마개로 보관한지 이틀쯤 되니까 신맛이 점점 올라온다. 물론 지금도 맛있긴 한데 어제 그러니까 처음 오픈했던 날 다 먹었으면 제일 좋았겠다.
이것 저것 마셔보고 있지만 역시 보르도 와인이 내 입맛에 맞는 것 같다. 지난번 올드바인 쉬라즈 이후 두번째 데일리 와인을 결정했다.
[2023년 3월 메모] 위에서 언급한 ‘올드바인 쉬라즈’ 라는 것은 WNNT 009 그레이스 올드바인 쉬라즈 이다. 가격도 맛도 진짜 좋았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어서 게시물도 남기지 않았다. 정말 아쉬운 와인 중 하나다. 여러 번 마셨지만 쉽게 구할 수 있을 줄 알고 리뷰도 한번만 남겼는데 아쉽게 되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기록 삼아 당시 메모해 놓았던 것을 일단 남겨 놓아야겠다.
그레이스올드바인쉬라즈. 이마트 1.2만원. 맡을 수록 기분 좋은 풍부한 포도향과 깔끔하지만 가볍지 않은 맛. 저녁으로 먹은 파스타도 잘 어울리고, 지금 안주로 먹고 있는 비엔나 소세지에도 맛과 향에서 밀리지 않는다. 쉬라즈 품종은 과일향이 강하고 뭐랄까 되게 힘이 쎄다. 어떤 음식과 먹어도 지지 않는다. 아 간만에 숙제처럼 먹는게 아니라 기분좋게 먹었다. 투핸즈쉬라즈는 엄청 유명한 와인인데 거기서 이 와인 만드는데 기여했나보다. 그리고 올드바인(비에이 비뉴)이란, 수명이 150년쯤 되는 포도나무 중에서 오래된 개체의 경우 포도송이가 덜 열리는데, 전체 에너지를 소수의 포도송이에 집중하므로 맛이 응축된다고 한다. 대신 수확량이 적어지므로 가격은 올라가는데, 이건 왜 12,000원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아주 맛있다.
노트 – 2020년 12월 15일
라피트 보르도 2017. 와인을 거의 처음 시작했을 무렵 그러니까 올 여름쯤 됐을까. 회사 근처 이마트를 일주일에 몇번씩 들락거리며 와인리스트를 구경하고 국가별, 품종별로 구매를 했었다. 그때 한참 와인 리뷰 및 해설 유튜브를 몰아서 보고 있었고, 신의 물방울도 재밌게 읽고 있을 때여서 라피트 이름만 보고 뜨헉하며 엄청 맛있다고 줄줄이 적어 놓은 리뷰가 아직도 있다. 그때는 병 브리딩으로 맛과 향이 변하는 게 정말 신기했고 재밌었던, 누구도 돌려줄 수 없는 그런 시기였으니까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소주, 맥주, 막걸리, 오렌지주스, 콜라 같은 식음료가 뚜껑 열어 놓으면 김 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맛이 바뀐다는 건 생각도 못해본 것이었으니까.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어쨋든 오늘은 그간 습득한 것이 있으니, 나름의 온도 조절과 병 브리딩을 위해 차가운 베란다에 한 잔 따라내서 산소 접촉면을 조금 넓힌 상태로 30분정도 지나서 마시기 시작했다.
붉은 과일과 오크 뉘앙스 등을 뒤로 하고 감초향이 아주 강하게 난다.
맛은 일단 타닌이 꽤 있으면서 새콤한 붉은 과일이 느껴진다. 끝에는 초콜릿 뉘앙스가 피니쉬에 있을 법하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묽어서 맛이 흐리다.
1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같다. 향에서 감초에 이어 매콤할 듯한 스파이시도 강하게 느껴진다. 뭐랄까, 편의점에서 산 몬테스에서 칠레 느낌이 빠지고 프랑스 느낌으로 바뀐 그런 느낌. 그게 뭔지는 설명 할 수 없지만.
기록 삼아 남기자면, 이제 원형의 돌돌 말아 쓰는 푸어러(디스크)가 없어도 와인을 따르다 질질 흘리지 않는다. 다 따르고 살짝 돌리면서 병을 드는 이유를 알겠다. 그리고 와인폴리에서 봤던가, 와인을 마시고 나서 두통이 심한 이유는 수분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와인을 마시는 중에 물을 한 잔씩 마시면 다음날 두통이 덜 하다고 한다. 내가 몇 번 테스트해보니 확실히 그렇다. 딴짓하다 까먹고 물을 먹지 않은 다음날은 두통이 있고, 간간이 수분을 섭취한 다음 날은 지끈거림이 거의 없다.
노트 – 2021년 9월 14일
라피트 보르도 2017. 이마트 1만원대. 까쇼는 30%밖에 안된다고 봤는데 피망향 잔뜩이다. 자세히 맡아보니 피망인 줄 알았는데 오크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크통은 비싸다던데 이 저렴한 와인에 어떻게 사용한 걸까. 산도는 썩 달갑지 않은 신맛이고 타닌은 약간 있다. 맛은 물 탄듯 맹맹하다. 1.9만원이었던거 같은데 좀 아쉽다.